2014년 6월 15일 주일설교

근실한 사람 (잠언 22장 29절)

우리는 영적으로 ‘새마을 운동’을 해야합니다.
우리 모두 건강하고 잘 살아야 합니다.
저주는 자동적으로 물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할 때 가난의 저주가 물러갑니다.
능숙한 자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면에서 복을 주십니다.
평안도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명예도 주십니다.
그러나 게으르고 미숙하게 살면 저주가 그치질 않습니다.
잘 살고 싶지 않습니까?

잠언은 사람에게 지혜롭게 하는 성경이라고 하여 ‘지혜문학’이라고 부릅니다.
희랍 사람들의 지혜는 추상적인 것인데 히브리 사람들의 지혜는 아주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것들,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잠언 한 절, 또는 두어 절이 독립된 격언들입니다.
잠언은 975절로 되어 있으니까 8백 여개의 유익한 말들이 모여 있는, ‘격언의 큰 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잠언서는 설흔한 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느 전도단체에서는 전도집회에서 예수를 믿겠다고 결심하고 일어선 분들에게 ‘하루에 잠언서 한 장씩을 읽으십시오’ 권면한다고 합니다.
하루 한 장 잠언을 읽으시기 부탁드립니다.
한 달이면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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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8일 주일설교

성령의 은혜를 받자 (이사야 32장 9-20절)

세월호 참사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단원고가 있는 안산에서 고훈 목사님은 안산제일교회를 담임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던 안산 단원고 2학년 승환이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제주로 수학여행을 떠날 때 아홉 살 여동생에게 “할머니 말씀 잘 듣고 공부 잘하고 있어”라고 당부하며 선물 사온다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오빠는 잠자는 몸으로 돌아왔습니다.
 
고훈 목사님은 새벽 6시에 교회장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이른 새벽에 자고 있던 누이동생이 오빠 출관예배 찬송소리를 듣고 깨어나 달려 나왔습니다. 오빠 관을 붙잡고 “오빠 오빠 나 놔두고 가면 안 돼. 할머니는 어쩌라고 나는 어쩌라고…”하며 울었습니다. 장례운구를 계속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고목사님은 목회 40년 동안 무수한 장례식을 치렀지만 이렇게 오빠를 서럽게 부르는 누이의 애통함 만큼 절실하고 처절함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누이동생의 오빠를 찾는 울부짖음이 슬프고 또 슬픈 것은 진도 앞바다에서 언니와 오빠, 누이동생과 남동생을 잃어버린 수백만 학생과 제자들을 잃어버린 수십만 스승들, 이 땅의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 그 친척과 대한민국 모든 사람의 눈물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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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일 주일설교

예수 안에 있는 우리 (고린도후서 5장 17절)

내가 누구입니까?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옛 모습으로 살고 있으니 안목사가 분명합니다.
나의 참 모습을 말씀 안에서 찾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예수 믿으세요”하고 전도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은혜 받기를 원하십니까?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은혜 받기를 결심해야 은혜를 받습니다.
예수 믿기로 결심하고 교회에 오십니까?
은혜 받기로 결심하고 예배에 참석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역사가 지금 일어날 것입니다.

한 번 선택은 10년을 좌우합니다.
예수 믿기로 결심하시면 이 세상은 물론 천국까지 좌우합니다.
단 한 번 사는 인생입니다.
지금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원님 지나간 다음에 나팔을 부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 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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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5일 주일설교

기도합시다 (창세기 12장 10-20절)

여러분은 기도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새는 날개가 아무리 무거워도 그것을 힘들어 하지 않습니다.
그로인해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코끼리는 코가 길고 무거워도 그 코를 귀찮아하거나 무겁다고 잘라내지 않습니다. 돛단배는 그 돛이 무거워도 그것을 꺾어버리지 않습니다.
그 돛 때문에 항해를 하기 때문입니다.
또 비행기도 날개가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날아갑니다.

‘노인들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소오 엘리저는 1990년에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던 이탈리아 여인입니다.
엘리저는 중국에서 선교하던 중에 폐병이 걸려 본국으로 소환되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을?”이라고 원망하지 않고 “나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 중국 선교를 도왔습니다.
그런데 추수를 하다 그만 탈곡기에 손이 들어가 오른손을 잃었습니다.
이때도 엘리저는 “주님,오른손이 없는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엘리저는 양로원을 세웠고 버려진 수천 명의 노인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엘리저는 불행한 환경을 극복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인생을 보냈습니다.
이제 우리의 기도도 “왜 나에게?”가 아니라 “주여,무엇을 원하십니까?”로 바뀌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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