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2일 주일설교

갚을 길이 없는 은혜 (누가복음 7장 36-50절)

어느 여름날 아침, 군중들이 보스턴에 있는 한 감옥소 앞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헤스터 프린이란 여인이 그 감옥 앞에서 벌을 받는 것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었습니다.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여인입니다.
그녀는 가슴에 그녀의 불의의 죄악이 빚어낸 갓난아기를 안고 천천히 자신을 구경하고자 모여든 군중들 앞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녀의 가슴 옷자락엔 빨간 천 바탕에 금실로 간음(Adultery)을 상징하는 A란 글자가 수놓아져 붙여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저지른 죄악이었습니다.
그러나 끔찍한 죄를 저지른 여인치고는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헤스터는 아이 아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준엄한 판사, 장군과 목사들이 그녀를 위협도 하고 어르기도 했지만 그녀는 자기 애인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군중 속에 섞여있는 한 늙은 사나이를 보자 헤스터의 몸이 갑자기 얼어붙는 듯 굳어졌습니다.
“설마 이럴 수가!”
그는 다름 아닌 그동안 소식을 몰라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녀의 남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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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5일 주일설교

근실한 사람 (잠언 22장 29절)

우리는 영적으로 ‘새마을 운동’을 해야합니다.
우리 모두 건강하고 잘 살아야 합니다.
저주는 자동적으로 물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할 때 가난의 저주가 물러갑니다.
능숙한 자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면에서 복을 주십니다.
평안도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명예도 주십니다.
그러나 게으르고 미숙하게 살면 저주가 그치질 않습니다.
잘 살고 싶지 않습니까?

잠언은 사람에게 지혜롭게 하는 성경이라고 하여 ‘지혜문학’이라고 부릅니다.
희랍 사람들의 지혜는 추상적인 것인데 히브리 사람들의 지혜는 아주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것들,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잠언 한 절, 또는 두어 절이 독립된 격언들입니다.
잠언은 975절로 되어 있으니까 8백 여개의 유익한 말들이 모여 있는, ‘격언의 큰 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잠언서는 설흔한 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느 전도단체에서는 전도집회에서 예수를 믿겠다고 결심하고 일어선 분들에게 ‘하루에 잠언서 한 장씩을 읽으십시오’ 권면한다고 합니다.
하루 한 장 잠언을 읽으시기 부탁드립니다.
한 달이면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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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8일 주일설교

성령의 은혜를 받자 (이사야 32장 9-20절)

세월호 참사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단원고가 있는 안산에서 고훈 목사님은 안산제일교회를 담임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던 안산 단원고 2학년 승환이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제주로 수학여행을 떠날 때 아홉 살 여동생에게 “할머니 말씀 잘 듣고 공부 잘하고 있어”라고 당부하며 선물 사온다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오빠는 잠자는 몸으로 돌아왔습니다.
 
고훈 목사님은 새벽 6시에 교회장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이른 새벽에 자고 있던 누이동생이 오빠 출관예배 찬송소리를 듣고 깨어나 달려 나왔습니다. 오빠 관을 붙잡고 “오빠 오빠 나 놔두고 가면 안 돼. 할머니는 어쩌라고 나는 어쩌라고…”하며 울었습니다. 장례운구를 계속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고목사님은 목회 40년 동안 무수한 장례식을 치렀지만 이렇게 오빠를 서럽게 부르는 누이의 애통함 만큼 절실하고 처절함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누이동생의 오빠를 찾는 울부짖음이 슬프고 또 슬픈 것은 진도 앞바다에서 언니와 오빠, 누이동생과 남동생을 잃어버린 수백만 학생과 제자들을 잃어버린 수십만 스승들, 이 땅의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 그 친척과 대한민국 모든 사람의 눈물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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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일 주일설교

예수 안에 있는 우리 (고린도후서 5장 17절)

내가 누구입니까?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옛 모습으로 살고 있으니 안목사가 분명합니다.
나의 참 모습을 말씀 안에서 찾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예수 믿으세요”하고 전도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은혜 받기를 원하십니까?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은혜 받기를 결심해야 은혜를 받습니다.
예수 믿기로 결심하고 교회에 오십니까?
은혜 받기로 결심하고 예배에 참석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역사가 지금 일어날 것입니다.

한 번 선택은 10년을 좌우합니다.
예수 믿기로 결심하시면 이 세상은 물론 천국까지 좌우합니다.
단 한 번 사는 인생입니다.
지금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원님 지나간 다음에 나팔을 부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 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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